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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운현 캘버리를 향해 걷는 100시간 2023. 6. 29. 05:13

─────── ───────

 
.
 
.
 
.
 
―칙,
 
치직, 칙.
 
뚝.
 
당신은 몇 번도 더 들은 라디오의 방송을 끄고,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오늘 쉬어가기로 한 폐공장의 창고 구석은 어둑합니다.
 
유일한 광원인 벽 꼭대기의 환풍구에서 정오의 햇빛이 비치고,
 
당신의 옆에선 남궁현이 고단한 얼굴로 잠들어 있습니다.
 
 
2022년.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동일한 질병 증세를 보였습니다.
 
학자들은 이 질병이 전례 없는 바이러스 때문임을 알아냈고, "파이로젠 바이러스"라 명명했습니다.
 
하지만 대중과 미디어는 이를 좀비 바이러스라고 불렀고, 자연스레 우리는 좀비 사태의 생존자가 되었습니다.
 
인류는 곧 좀비들에게서 몇몇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 바이러스는 곧 전 지구를 장악했고,
 
인류의 70% 이상이 감염되며 전 세계가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정부는 힘을 잃고, 집단 자살이 성행했으며 많은 사람이 인류의 멸망을 노래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인간은 생존할 길을 찾기 마련입니다.
 
좀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연합정부가 설립되었고,
 
이 기관은 생존자들을 위한 ‘안전지대’를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좀비 사태가 발발한 지 1년 7개월 12일째.
 
당신은 이 절망적인 세상 속에서도 안전지대로 향하는 여정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방학을 맞이하여 먼 미국 땅으로 휴양을 왔던 당신과 현은 좀비 사태를 마주했죠.
 
불행 중 다행인 점은, 회사 별장을 사용 중이었기에 사람이 적은 동네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더욱 다행인 점은,
 
당신과 현이 함께 있던 상황에서 이 사태가 터졌단 것이겠죠.
 
 
 
 
당신은 잠든 현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런데, 현의 상태가 좀 이상합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립니다.
 
김하운: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현이 중얼거리는 말을 주의 깊게 들어보았습니다.

 

 
남궁현:…약속해야 해, 반드시…,
 
뭘 약속한다는 걸까요, 현의 표정은 마치 악몽이라도 꾸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잠든 현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남궁현:허억! 헉…, 헉…,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어난 현은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다, 얼마 후 가까스로 진정합니다.
 
김하운:(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현을 바라봅니다.) 나쁜 꿈이라도 꿨어요? 안색이 안 좋아요.. 괜찮아요?
 
남궁현:(옅은 한숨을 내쉬고 마른 세수를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용은 기억 안 나는데, 되게 기분 나쁜 꿈이었어.
...나 괜찮으니까, 걱정 마.
 
김하운:응. 알겠어요... 괜히 생각나고 찝찝할테니 후딱 잊어버리자구요. (안심하라는 듯 이마에 가볍게 입 맞춥니다.)
 
남궁현:...응, 그럴게. (너의 입맞춤에 아주 옅은 미소를 짓고는 너의 품에 고개를 잠시 묻었다. 숨을 고르고는 상체를 일으켜 앉아선 자신의 앞머릴 쓸어 넘기며 말한다.) 것보다, 지금 몇 시야?
 
현은 당신에게 대뜸 시간을 묻습니다.
 
지금 시간은 아침 11시 48분. 곧 정오네요.
 
현은 손목시계를 확인한 후 당신에게 말합니다.
 
남궁현:내가 보초 설게. 너 이제 좀 자라, 응.
 
그러더니 대뜸 현은 당신을 꾹 껴안고 한동안 말이 없다가……,
 
오랜 침묵 후에 비로소 입을 엽니다.
 
남궁현:김하운. 나한테 너보다 소중한 건 없어, 알지?
 
무언가 더 말을 하려다 말고, 현은 당신을 바라보며 웃습니다.
 
남궁현:피곤하지? 얼른 자. 깨워줄게.
 
현은 자리를 펴고 누운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여정의 피로 때문일까요, 당신은 금세 잠에 빠집니다.
 
남궁현:, …운아, …김하운! 일어나, 움직이자.
 
당신은 현의 손길에 눈을 뜹니다.
 
눈을 뜨자 보이는 환풍구 너머의 하늘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습니다.
 
곧 좀비들은 활동을 멈출 테지요.
 
당신과 현은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창고를 떠납니다.
 
어둠과 달빛이 내려앉은 공장 부지는 황량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따금 공장 유니폼 같은 옷을 입은 좀비들이 흐리멍텅한 눈으로 목적 없이 배회하는 것이 보입니다.
 
당신과 현은 숨을 죽이고 살금살금, 폐공장 지대를 빠져나옵니다.
 
김하운:
기준치: 70/35/14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이 한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텁,
 
현이 당신의 앞길을 가로막습니다.
 
현의 손짓을 따라 땅바닥을 보니 당신의 발밑에 빈 과자 봉지가 있습니다.
 
밟았다면 주변 좀비들에게 들킬 뻔 했네요.
 
당신과 현은 지도를 보면서 평소와 같이 긴 여정을 걷습니다.
 
뻥 뚫린 흙길과 초원은 이따금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를 제외하고는 고요합니다.
 
오늘은 달이 밝아 다른 조명 없이도 길이 잘 보입니다.
 
얼마나 걸었을까요.
 
현은 저 멀리 너머를 보다가 당신에게 말합니다.
 
남궁현:아, 마을이다. 저기 보이지?
 
발밑이 흙길에서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로 바뀐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라는 간판이 새벽 어스름 너머로 보입니다.
 
간판에는 검붉은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는 것이 영 을씨년스럽습니다.
 
남궁현:좀 있으면 해 뜨니까, 여기서 쉬었다 가자.
 
당신과 현은 마을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한때 주민들이 살았을 마을의 거리는 을씨년스럽게 텅 비어있습니다.
 
이젠 사람이 살지 않는 듯한 주택들이 일렬로 서 있고, 거리에는 드문드문 보이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체들과 쓰레기들이 널려있습니다.
 
당신과 현은 이따금 보이는 좀비들을 피해 거리를 걷다, 주변에 좀비들이 없는 집 한 채를 발견합니다.
 
저 집이라면 좀비들과 싸우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과 현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평범한 단독 주택의 가정집 안은 이미 생존자들이 다녀갔는지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습니다.
 
집안을 둘러보니 거실이었을 공간에 도끼주방, 그리고 세 개의 방이 보입니다.
 
어느 것을 볼까요?
 
김하운:(역시 몸을 보호 할 수 있을 날붙이에게 눈이 이끌립니다.)
(도끼를 확인합니다.)
 
제법 큼직한 손도끼입니다.
 
평소라면 나무를 다듬는 데나 쓰였겠지만 지금은 그 쓰임새가 좀 달랐겠지요.
 
도끼날과 손잡이엔 핏자국이 검붉게 말라붙어 있습니다.
 
다음은 무엇을 볼까요?
 
김하운:조리가 가능할까요? 뭘.. 해 먹을 수 있으려나..
(주방을 확인합니다.)
 
냉장고는 텅 비어있고, 검게 변한 핏자국으로 더러워진 식탁과 조리대 위에는 식칼과 쇠톱이 놓여 있습니다.
 
쇠톱의 날 사이사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점들이 굳은 피와 엉겨 붙어있습니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것들이네요.
 
주방 구석에 놓인 큼직한 검은 쓰레기통에선 악취가 풍겨옵니다.
 
다음은 무엇을 볼까요?
 
김하운:(이런 환경에 놓인지 꽤 오랜 시간 동안, 보통 사람들은 악취나 역겨운 광경에 대한 감각이 무뎌졌을 법 합니다. 그렇지만 항상 감각에 날 선 그는 팔로 코를 막고 인상을 찌푸릴 뿐입니다. )
(세 개의 방을 살핍니다.)
 
세 개의 방문은 나란히 위치해있습니다.
 
첫번째 방, 두번째 방, 세번째 방 중 어느 곳부터 갈까요?
 
김하운:(성큼 걸어가 첫 번째 방부터 차례대로 살피기로 합니다.)
(첫 번째 방을 확인합니다.)
 
이 방은 서재로 쓰던 방인 모양입니다.
 
한쪽 벽면을 책장이 차지하고 있고, 그 반대편인 책상이 놓여 있는 아담한 구조입니다.
 
어느 것을 볼까요?
 
김하운:(이 집에 살던 사람의 책장이 궁금해졌습니다. 이것은 좀비 사태 발발 이래 생겨난 그 혼자만의 호기심입니다. 이제는 비어버린 집에서 책이나 DVD, 레코더등을 확인하고, 이곳에서 일상을 보냈던 사람의 모습을 상상 해보는 것이요.)
(책장을 확인합니다.)
 
책을 보고 도로 꽂아놓지 않아 드문드문 책장이 비어있습니다.
 
책들은 주로 생물학에 관한 책인 것을 보아, 방 주인의 전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책꽂이를 돌아보던 와중 그중 반쯤 덜 꽂힌 책이 눈에 들어옵니다.
 
‘감염에 관하여’, ‘정신이상 행동론’….
 
이런 책은 왜 읽은 걸까요.
 
다음은 무엇을 볼까요?
 
김하운:(묘하게 현 시점과 들어맞는 책들을 보고 가벼운 비음을 내보냅니다. 이어서 책상으로 눈을 돌립니다.)
(책상을 확인합니다.)
 
한쪽 벽의 작은 책상 위에는 작은 보라색 향초와 액자, 메모 패드가 놓여 있습니다.
 
메모 패드는 작성된 지 꽤 되었는지 먼지가 쌓여 있네요.
 
어느 것을 볼까요?
 
김하운:(액자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립니다.)
 
당신은 액자를 들어 사진을 보았습니다.
 
이 집에 살았던 가족들의 사진 같아 보입니다.
 
사진 속에는 젊은 부부와 두 아이가 행복하게 웃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금, 살아 있을까요.
 
다음은 무엇을 볼까요?
 
김하운:(사진 속 그들의 웃음을 확인합니다. 조금 쌓였을 먼지들을 소매로 간단히 훔치고, 들었던 것과 마찬가지의 세심함으로 다시 제자리에 올려둡니다.)
(그리고 쌓인 먼지를 탈탈 털어내며, 메모 패드를 확인합니다.)
 
낡은 메모 패드에는 구겨진 종이 뭉치들이 껴 있습니다.
 
전에 이 집에 살던 사람이 적은 것 같네요.
 
종이 뭉치 곳곳에는 피로 보이는 얼룩이 묻어 있습니다.
 
김하운: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제 보니, 이건 이 집에 살던 생존자의 마지막 기록인 것 같습니다.
 
곳곳에 묻은 얼룩으로 읽기 힘들었지만, 드문드문 멀쩡한 페이지들은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하운:제시.. 벨, 쟝.. 카샤 리센.... (이름을 나지막히 불러보며 액자 속 가족 사진을 바라봅니다. 메모를 통해 좀비의 습성을 새로 익힙니다.)
 
다음은 어느 방을 볼까요?
 
김하운:(두 번째 방을 확인합니다.)
 
방문이 뻑뻑하게 닫힌 게 잘 열리지 않습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고 문이 열리고…
 
…방안의 좀비들이 일제히, 당신을 쳐다봅니다.
 
아, 아까 가족사진에서 본 그 가족이네요.
 
김하운:
민첩
기준치: 65/32/13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당신이 황급히 문을 닫으려는 찰나 좀비가 당신을 통해 팔을 뻗었습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좀비의 손이 문틈에 끼었습니다.
 
좀비의 기괴한 소리가 문틈에서 새어 나옵니다.
 
당신은 온몸으로 문을 지탱합니다.
 
문 너머에서 좀비들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남궁현:조심!
 
당신의 뒤에서, 거실의 손도끼를 들고 달려온 현이 문에 낀 좀비의 손을 잘라냅니다.
 
좀비의 썩은 손이 도끼 날에 툭, 잘려 나가고 잠시 문이 가벼워진 찰나, 당신은 문을 닫을 수 있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손이 몇 번 꿈틀대다가 이내 곧 활동을 멈춥니다.
 
썩은 시체나 다름없는 잘린 손에선 불쾌한 악취가 납니다.
 
김하운: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42
판정결과: 보통 성공
 
남궁현:여긴 잠가 놓자.
 
당신과 현은 서재에서 의자를 가져와 문 고리 사이에 비스듬히 세워 놓았습니다.
 
문 틈새에서 좀비들의 기괴한 소리가 새어 나오다 곧 끊깁니다.
 
이거로 당분간은 안심이겠죠.
 
다음은 어디를 볼까요?
 
김하운:... 다행이다. 급하게 못 닫아서.. 좀비들이 나오는 줄 알았어요...
(한숨을 작게 내쉬며, 마지막으로 세 번째 방을 확인합니다.)
 
다른 방보다 비교적 깔끔한 이 방은 침실입니다.
 
옷가지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옷장과, 킹사이즈의 침대가 놓여 있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침대서 잘 수 있겠어요.
 
당신과 현은 방의 문을 단단하게 잠그고 간단하게 짐을 푼 후 침대에 나란히 누웠습니다.
 
현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며 당신에게 말합니다.
 
남궁현:힘들었지? 오늘은 내가 먼저 보초 설게. 먼저 자.
 
잘자 라고 말하는 현의 표정은 어딘가 지쳐 보이고, 또 슬퍼 보이기도 합니다.
 
...기분 탓이겠죠.
 
표정이 없는 현의 얼굴은 종종 처연해 보이기도 했으니까요.
 
당신은 현에게 뭔가를 더 말하려 했지만…
 
오랜만에 눕는 푹신한 침대에 금세 잠에 빠져버립니다.
 
당신은 창틈으로 비치는 햇빛에 눈을 떴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오랜만에 침대서 자서 그런지 더할 나위 없이 개운한 기분입니다.
 
창밖을 보니 노을 지는 하늘이 붉습니다.
 
분명 눈을 감을 땐 동이 터오던 시간이었는데……,
 
그렇다는 건, 낮 동안 현은 당신을 깨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주변을 황급하게 둘러보았습니다.
 
현은 당신에게서 등을 돌리고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김하운:형.. 왜 깨우지 않고, .. 뭐해요?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2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현은 당신이 일어난 것도 모른 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대며,
 
노트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남궁현:아, 일어났네. ...잘 잤어?
 
김하운:형 덕분에요. 오랜만에 편하게 자긴 했는데... 저 자는 새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현의 옆으로 다가옵니다.)
 
남궁현:(네가 다가오자 노트를 슬쩍 덮고 뒤로 빼둔다. 너의 머리를 잠시 쓰다듬어 주고는) 별 일 없었으니까 걱정 마. 오랜만에 잘 잤다니 다행이네. 오늘 많이 걸을 수 있겠다, 그치.
 
김하운:응... 그치만. 형이 좀 쉬어야 하는데.. 저번 마지막에도 형이 보초 서서 두 번이나 연달아 했잖아요.. 힘들지 않아요? 다음번 보초는 제가 설게요. 가는 길 힘들면 ~ 형 업고도 갈 수 있어요. (헤헤. 하고 웃으며 가만히 쓰다듬 받습니다.)
 
남궁현:괜찮아, 아까 너 깨기 전에 좀 잤어. 지금 더 쉬었다 가기도 애매하니까 출발하자. (일어나서 짐을 천천히 싸기 시작했다.) 다음엔 보초 네가 서. 업고 가진 말고. (너를 보다가 옅은 웃음 짓고는 다시 짐을 챙겼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현의 말대로 여기서 더 쉬었다가 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루빨리 안전지대로 가야 하니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당신과 현은 길을 떠납니다.
 
발걸음을 옮기며 보이는 집 사이로, 목적도 없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좀비들이 보입니다.
 
좀비들을 피해 조심조심 걸으며 마을을 거의 다 빠져나오자,
 
마을 외곽의 꽤 큼직한 마트가 눈에 들어옵니다.
 
남궁현:오, 마트다.
우리 들어가 보자. 마트인데 뭐라도 있지 않겠냐. 통조림 같은 거 말야. (허락해 달라는 듯 너를 본다.)
 
김하운:그럴까요? 대신 조심히. 제가 두 배로 예민하게 반응하려고 노력 하겠다만.... 형은 지금 피로가 누적된 상태잖아요. 알겠죠? (손을 꼭 잡고 마주 보며 웃습니다.) 음~ 좀 큰 마트인데. 탈색약도 있으려나? 아니면~ 이참에 아예 흑발로 염색하는 건요? (흡사 샴 고양이처럼 변한 현의 머리칼을 바라 봅니다.) 시간이 난다면~ 기분 전환 겸 해서요 ! (그러면서 키득키득 웃네요. 이쪽은 샴 고양이이던, 흰 고양이던, 검은 고양이던 모두 환영이니까 말이에요.)
 
남궁현:괜찮아, 괜찮아. 나 컨디션 나쁘진 않아. 그래도 조심히 들어가 보자. (너의 손에 깍지를 슬며시 끼고는 마트로 발걸음 옮긴다. 다른 손으로 괜히 제 머리칼을 만지작대고는) 나 혼자서 염색 못 하니까 네가 해 줘, 알았지? 검은색이 좋으려나. 너... 나 검은 머리인 거 한 번도 못 봤잖아.
 
김하운:(지금이 좀비 사태가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쓰나미가 몰려오는 자연 재해 사태 상황이더라도, 이렇게 손을 맞잡으면 두려울 게 없다고 느낍니다.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탈색은 시간이 좀 걸리니 흑발로 아예 덮어버리는 것도 좋죠. 설렌다. 형 까만 머리 볼 수 있으려나. (원래는 흰 고양이 - 지금은 샴, 염색하면 네로. 라며 설명합니다. 아무래도 연인을 단단히 고양이처럼 보고 있는 모양.)
 
현은 가벼운 웃음을 짓고는 마트에 들어섰습니다.
 
이미 생존자들이 다녀갔는지 빼곡히 늘어진 진열대가 많이 비어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나마 물건들이 올려진 오른쪽 선반왼쪽 선반, 그리고 한쪽 벽엔 창고라 써진 팻말이 보입니다.
 
어느 것을 볼까요?
 
김하운:(맞잡은 손을 앞 뒤로 조금씩 흔들며, 오른쪽 선반을 확인합니다.)
 
장난감 코너입니다.
 
곰 인형, 유니콘 인형, 비비탄 총….
 
당신은 인형들을 둘러보다 노래하는 곰돌이라는 태그가 붙은 인형을 발견합니다.
 
만져볼 건가요?
 
김하운:(누르면 소리가 나는 곰인형 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심히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소리는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곰돌이를 만지지 않는 대신, 현을 부릅니다.)
이거 그거인 것 같아요. 알러뷰 곰돌이. 배 누르면 소리 나는 거 있잖아요. 세트 포인트 같은 느낌인데.
(그러면서 자기가 제 배를 꼭 누르더니, "사랑해요~" 소리를 합니다.)
 
남궁현:(곰돌이 인형을 보다가 너를 가만히 본다. 옅은 웃음을 보이고는 잠시 말이 없다가 네 배를 여러 번 콕콕콕 누르고 다시 가만히 기다린다.)
 
김하운:(얌전히 배를 콕콕 당하곤, 가만히 현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내 꽈악 끌어 안아주고, 귓가에 누른 횟수 만큼 사랑한다고 속삭입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요.
 
남궁현:(네가 꽉 안아주자 만족한 듯이 너의 등을 쓸어주었다. 목과 볼에 되는 대로 입술을 몇 번 맞춰주고는 너를 올려다본다.) 어디서 이런 귀여운 짓을 배웠냐. 귀여워서 진짜..., (미묘하게 웃는 소리를 내고는 떨어져서 손을 잡았다. 네 옆에 서서 아까의 그 곰돌이 인형을 보다가 괜히 한 번 만져보았다.)
 
인형의 등 뒤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어둡고 고요한 매장 안에 동요가 울려 퍼집니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동쪽하늘에서도, 서쪽하늘에서도………
 
당신은 황급히 인형의 버튼을 눌러 노래를 껐습니다.
 
주변에 좀비가 없는 것이 다행이에요.
 
그런데 현은 인형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주머니에 넣습니다.
 
다음은 무엇을 볼까요?
 
김하운:(왼쪽 선반을 마저 확인합니다.)
 
생존에 필수적인 식료품들이 있던 선반입니다.
 
생존자들이 다녀갔음을 증명하는 듯, 빼곡했을 선반이 텅 비었습니다.
 
드문드문 있는 것들도 그냥 쓰레기네요.
 
김하운:
기준치: 70/35/14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선반을 끝까지 살펴보았지만, 쓰레기밖에 없었습니다.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좋았겠네요.
 
다음은 무엇을 볼까요?
 
김하운:흠.. 아쉽다. 뭔가 따로 보이는 음식은 없는 것 같아요.
그나저나, 곰돌이는 왜 챙겼어요? 노래가 좋아서?
(팻말을 확인하기 전, 현에게 잠시 묻습니다)
 
남궁현:(눈동자를 살짝 굴리면 아주 잠시 말이 없다가 이내) 노래가 좋기도 하고, 귀엽잖아. 뭔가 너 닮았어. 보초 설 때 외로우면 옆에 세워두려고 그랬지.
 
김하운:.. 그럴 땐 절 잠깐 깨우면 되잖아요~. 배 한 번 누르면 자다가 일어나서라도 사랑한다고 해줄텐데. (뭔가 은은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속으로 '귀여워. 진짜 귀엽다. 어떡하지?' 같은 생각을 한 게 분명합니다.)
 
남궁현:내 성격에 자는 애 깨우겠냐. 네가 자는데 어떻게 깨워. (검지로 네 볼을 쿡 누르고는 속으로 귀엽다는 생각을 한참 했을 테다) 잘 때는 꿈에서 많이 하고, 일어나있을 때 사랑한다고 많이 해줘.
 
김하운:으음~. 알겠어요. 저번에 형이 꿈에서 중얼거린 것 처럼.. 나도 자주 사랑한다고 중얼거려야겠다. (저항없이 볼을 눌리고는 이내 팻말을 확인하러 걸음을 땝니다.)
(창고 팻말을 확인합니다.)
 
창고라는 팻말이 달린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잠겨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당신은 지난번 들린 집에서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 안으로 들어가야 할까요?
 
김하운: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55
판정결과: 실패
 
무슨 소리가… 들렸나요? 잘 모르겠네요.
 
남궁현:(네 손을 잡고 창고를 보다가 너를 본다) 창고 들어가 볼래? 바깥에 뭐가 없었으니까 안에는 뭐가 좀 있지 않겠냐.
 
김하운:.. 별로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요. 저번 집에서도 그랬고.. (벽에서 귀를 때고 현을 바라봅니다.) 진열대보다 더 많은 양의 재고가 창고에 있을텐데.. 이미 진열대도 털린 지 한참 된 것 같다면 '창고'라고 버젓이 적힌 곳에 뭔가 남아 있을 것 같진 않거든요. 그리고 창고의 다른 쓰임새는.... 잘 쓰이지 않는 것들을 수납하는 용도죠. 가령.. 좀비로 변한 사람 같은 걸요.
 
남궁현:음..., 일리 있는 말이긴 하네. (잠시 고민하다가) 그래도 바깥에 필요한 물건이 다 있어서 안은 아예 안 봤을 가능성도 있잖냐. ...뭐어, 네가 정 싫다면 들어가진 않을 거긴 한데, 난 들어가 보고 싶어서.
 
김하운:흠.. 일단 소리는 못 들었는데.... 정말 뭔가 있을지도 모르니 확인 해보는 것 정돈 좋다고 생각해요. 한 번 살펴볼까요?
(아주, 아주 조심히, 창고 안을 살피기 위해 문을 엽니다.)
 
당신과 현은 숨을 죽이고 창고 문을 노려보았습니다.
 
짧게 눈빛을 주고받은 후 당신은 천천히 창고 문을 열었습니다.
 
창고 문이 열리자 좀비의 희뿌연 눈이,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고 입구를 향합니다.
 
이윽고 괴상한 소리를 내며 좀비가 당신들에게 달려옵니다.
 
김하운:
근력
기준치: 75/37/15
굴림: 6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주변의 기물을 이용하여 좀비를 처치합니다.
 
당신이 미처 막지 못한 좀비가 현에게 향하고,
 
현 또한 사력을 다해 싸우게 됩니다.
 
당신과 현은 좀비가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썩은 살점과 피가 사방에 튀어 흘러내립니다.
 
김하운: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처참하게 짓뭉개진 좀비의 시체를 뒤로 하고 당신은 창고 안을 돌아보았습니다.
 
널찍한 창고에서 그나마 멀쩡한 오른쪽 상자, 중간 상자, 왼쪽 상자를 발견합니다.
 
어느 것을 볼까요?
 
김하운:형, 괜찮아요? (다급히 현의 상태를 먼저 확인합니다.) 다친 곳은, 없어요?
 
남궁현:(몸에 붙은 더러운 것들을 툭툭 털어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괜찮아. 넌 어디 안 다쳤어? 저것들은 네가 더 많이 쳐냈잖아. 내가 열자고 했는데 너만 힘들었네. 내가 앞에 있을 걸 그랬나.
 
김하운:괜찮아요. 조심하기도 했고.. 얼추 예상한 상황이어서 대처가 빨랐나봐요. (어깨를 으쓱, 한 번 합니다. 뭉개진 좀비의 시체에서 최대한 눈을 땝니다.) 그치만~. 형 말대로 뭔가 있는데요? 확인해볼까요?
(오른쪽 상자를 엽니다.)
 
유행이 지난 옷들을 무더기로 세일할 때 쓰였던 상자인가 봅니다.
 
상의, 겉옷, 바지, 속옷, 양말 등…
 
당신과 현의 몸에 맞는 옷들도 있었습니다.
 
몇 달째 입고 다니던 누더기 같은 옷을 갈아입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김하운, 이성 1 증가.
 
다음은 무엇을 볼까요?
 
김하운:오~ 옷들이다! 좀 더 개운한 기분이 들겠는데요? 다행이다!
(그렇게 말하며, 가운데에 있는 상자를 열어봅니다.)
 
상자 안을 열어보자 단백질 바 한 무더기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거면 족히 몇 주는 먹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창고를 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은 무엇을 볼까요?
 
김하운:(왼쪽 상자를 확인합니다.)
 
누군가에겐 정말 절실할… 술이 들어있습니다.
 
비록 마트에서 파는 싸구려 와인이지만, 이 망해버린 세상에선 감지덕지죠.
 
애주가인 현이 보면 좋아하지 않을까요?
 
창고를 둘러보던 당신은 문득 당신 곁에 현이 없어진 것을 발견합니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현이 죽은 좀비의 시체를 뒤지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남궁현:하운아, 이거 봐. 총.
 
이 좀비는 살아 생전 마트의 보안요원이었나 봅니다.
 
현은 좀비의 뒷주머니에서 꺼낸 권총을 들고 있습니다.
 
총을 살펴보던 현은 외투 안쪽에 총을 집어넣습니다.
 
남궁현:소리 때문에 좀 그렇긴 해도…, 갖고 있어서 나쁠 건 없을 것 같다.
 
마트 밖으로 나오니 동이 터오고 있습니다.
 
좀비와 싸우느라 시간을 꽤나 지체한 모양이에요.
 
밤까지 기다려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현이 말을 꺼냅니다.
 
남궁현:음…, 하운아. 좀 힘들어도 오늘은 낮에도 움직이는 거 어떠냐.
뭐어… 계속 도로라서 좀비도 많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있어도 조심하면 되는 문제니까, 어때?
조금이라도 빨리 안전지대로 들어가는 게 좋잖냐.
 
김하운:..형 체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계속된 이동이라면 갑자기 힘이 딸릴 수도 있고...
 
남궁현:(잠시 고민하더니) 난 괜찮아. 별로 힘들지도 않고..., 너는 괜찮아? 너 괜찮으면 낮에도 움직이자.
 
김하운:...형 덕분에 전 지금 완~전 괜찮아요. 잠도 충분히 자뒀고, 아까 형이 보자고 한 창고에서 옷도 갈아입고~ 단백질 바도 잔뜩 챙겼으니까요. (눈을 접으며 웃습니다.)
 
남궁현:(네 눈을 보고는 슬며시 눈가를 쓸어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그럼 오늘은 계속 움직이자.
 
김하운: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그렇게 말하는 현의 표정은 어딘가 굉장히 불안하고 초조하고…, 조급해 보입니다.
 
자세히 보니 아픈 것 같아 보이네요.
 
당신은 현과 짐을 챙겨 동이 터오는 거리로 나왔습니다.
 
드문드문 보이는 좀비들을 피해 숨을 죽여 한참을 걸으니, 드디어 고속도로가 나왔습니다.
 
해가 이렇게 떠 있을 때 이동한 건 정말로 오랜만이에요.
 
머리 위로 작열하는 태양이 뜨겁습니다.
 
김하운:우... 한국도 이렇게 더우려나.. (손을 이마에다 가져다 대 작은 그늘을 만듭니다. 시야를 조금 편하게 확보하기 위해서요. 그리고 현의 이마에도 손을 가져다 대 그늘을 만들어 줍니다.) 형, 괜찮아요? 많이 덥죠...
 
남궁현:(마찬가지로 더운 듯, 헉헉대는 소리를 간간이 내며 말없이 걷는다. 무슨 생각이라도 하는지 허공을 응시하며 걸을 뿐이었다. 그러다 네 손이 다가오자 몸을 움찔 떨고는 너를 본다.) 미안, 못 들었다. 뭐라고 했어?
 
김하운:한국도 덥, 아니... , 괜찮아요? 형 어디 아파요? (아픈 기색을 본 것을 확인 해보려는지 아예 현을 세우고 앞으로 돌아 옵니다. 이 더운 날,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가만히 이마를 짚어보기도 합니다.)
 
남궁현:(마른 세수를 하고 고개를 숙여 허공을 다시 응시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나 괜찮아. 괜찮으니까 그냥 가자. 빨리 가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아. (왠지 네 말에 건성으로 답하고 넘기려는 듯한 태도다. 걸어오는 새 무슨 심경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너의 옆을 스쳐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이상하죠. 당신이 무슨 말을 해도 대화는 오래 이어지지 못합니다.
 
현은 마치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여요.
 
결국 당신과 현 사이엔 어색한 침묵만이 맴돕니다.
 
정오가 가까워지는 듯 길게 늘어졌던 그림자가 점점 짧아집니다.
 
 
 
 
얼마나 길을 걸었을까요, 비로소 현이 먼저 말을 꺼냅니다.
 
남궁현:저기서 조금 쉬었다 가자.
 
현의 손가락을 따라 가면, 저 멀리 도로 위에 주유소가 보입니다.
 
이곳은 관리인 한두 명을 둔 작은 주유소였나 봅니다.
 
간간이 보이는 시체들은 보이지만 좀비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잠깐이라도 쉬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당신과 현은 주유소를 둘러보았습니다.
 
자판기와 주유소에 딸린 작은 사무실, 그 옆에는 무인으로 사용할 수 있는 주유기 몇 대가 보입니다.
 
어느 것을 볼까요?
 
김하운:(자판기를 먼저 확인 합니다. 음료가 있으면 좋을텐데요.)
 
이미 생존자들이 자판기를 뜯어서 내용물을 다 가져갔는지, 깨지고 망가진 자판기는 텅 비어있습니다.
 
김하운:
관찰력
기준치: 72/36/14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당신은 혹시 남은 것이 없나 하고 자판기를 뒤져보았지만, 나오는 건 부품 잔해들과 쓰레기 뿐이었습니다.
 
다음은 무엇을 볼까요?
 
김하운:(사무실에 들어가봅니다.)
 
사무실의 문을 돌려 보았지만 굳게 잠겨있습니다.
 
하나뿐인 창문엔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어 안이 보이지 않습니다.
 
열쇠를 찾아봐야 하는 걸까요.
 
다음은 무엇을 볼까요?
 
김하운:(블라인드 너머로 안을 확인하려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주유기를 먼저 확인합니다.)
 
평범한 주유기입니다.
 
당신이 기름을 챙겨 가면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텁.
 
피투성이인 손 하나가 당신의 발목을 붙잡습니다.
 
: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당신이 시체인 줄만 알았던 그는,
 
이미 감염된 지 몇 시간이 지난 듯, 코와 귀에서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하반신이 뜯어 먹혀 두 다리가 보이지 않고, 찢어진 배 아래로 근육과 장기가 드러나 보입니다.
 
처참한 몰골의 그 생존자,
 
아니, 감염자일까요.
 
당신의 발목을 붙잡는 손가락들은 처절하기까지 합니다.
 
한쪽 눈은 파먹혔는지 보이지 않고, 간신히 뜬 나머지 눈으로 당신을 올려다보며 애원합니다.
 
: 목이 너무 말라요, 물, 물 한 모금만, 제발…,
 
그가 당신의 다리를 향해 나머지 한쪽 손도 뻗으려던 찰나,
 
 
콰직,
 
현의 신발 굽이 당신에게 뻗은 손을 무참히 짓밟습니다.
 
당신이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현은 그를 향해, 쇠파이프로 내리칩니다.
 
 
외마디 비명도 곧 그치고, 현의 중얼거림과 고깃덩이나 다름없는 시체를 내리치는 둔탁한 소리만이 주변을 메웁니다.
 
남궁현: 죽어, 죽어…!!
 
쇠파이프로 내리치는 현의 눈은 핏발이 섬뜩하게 서 있습니다.
 
이젠 형체도 모르게 뭉개진 몸뚱이에서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튑니다.
 
이미 죽은 것이 분명하건만, 몇 번이고 쇠파이프로 내리치는 것을 반복하던 현.
 
그는 이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당신을 돌아봅니다.
 
남궁현:……괜찮아?
 
당신을 바라보는 그 표정은, 아까의 그 살기 어린 얼굴과는 다르지만…
 
…여전히 두 눈만은 붉게 충혈되어 있습니다.
 
그 모습은, 당신이 기억하던 현의 모습과는 어딘가 섬뜩하고 이질적입니다.
 
김하운: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당신이 현에게 무어라 말을 꺼내려는 찰나, 끼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쥬드:…와, 장난 아닌데?
 
말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반쯤 열린 사무실의 안쪽에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습니다.
 
쥬드:저기, 우선 들어와서 얘기할래요? 밖은 또 언제 좀비들이 올지 모르니까.
 
당신과 현은 남자를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습니다.
 
작은 사무실이라 세 사람이 들어가니 방이 꽉 찹니다.
 
당신과 현이 짐을 풀고 자리에 앉자, 남자는 자신을 소개합니다.
 
쥬드:이게 얼마 만에 만나는 생존자인지 모르겠네. 우선 저는 쥬드 라고 합니다.
당신들도 안전지대로 가고 있죠? 저도 그래요. 댁들은 이름이 어떻게 돼요?
 
김하운:... (날 선 눈으로 쥬드를 바라봅니다.) 하운입니다. 이쪽은.. 현. 현이에요. (방금 있었던 일을 감안해 대신 소개를 이어나갑니다.) 맞아요. 안전지대로 가고 있었어요.
 
쥬드:하운... 현. 어렵지 않은 이름이네요. 그보다 라디오 안 듣고 살아요? 낮에 움직이지 말라고 라디오에서 계속 나오잖습니까. 왜 이 시간에 돌아다니죠? 위험하게.
 
김하운:사정이 있어서요. 빠르게 도착하면 좋기도 하고요. (주위를 둘러보며 앉을 곳을 찾아 마련합니다. 그리고 현을 앉히고 한숨 돌립니다.) 탁 트인 도로에서 좀비를 만나는 상황에서는 그나마 처치가 쉬워서요. (그렇게 말하는 내내 쥬드에겐 흘끔흘끔 확인의 시선만 줄 뿐, 관심은 현에게 가 있습니다.)
 
쥬드:뭐... 일리는 있지만 무모한 선택이네요. 저 친구는 좀 아픈가 봐요? 안색이 영... (뜸) 잠시 쉬었다가 저녁에 같이 이동하지 않을래요? 혼자서 아픈 친구 데리고 다니기 힘들겁니다.
 
김하운:오랫동안 쉬지 않아서 좀 피로한 겁니다. (쥬드가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그것이 아니라는 듯 단칼에 잘라냅니다.) ... 동행...하자고요? .. 흠.. (조금 생각해보는 듯 하더니, 현에게도 묻습니다.) 형, 이사람과의 동행.. 괜찮아요?
 
남궁현:(짐을 풀면서 네 말을 듣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갤 끄덕인다.) 맘대로 해.
 
김하운:(어차피 목적지가 같으니 동행하기로 합니다.)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하죠.
 
현이 아닌 사람과 대화를 한 게 얼마나 오랜만인지요.
 
조금씩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배가 고파옵니다.
 
오늘은 낮에도 걸었으니 여기서 식사를 한 후 쉬어가기로 하였습니다.
 
칼로리 바와 참치 통조림, 쥬드가 꺼낸 무화과 등등.
 
오랜만에 꽤 풍성한 식사를 한다는 느낌입니다.
 
그러고 보니 마트에서 챙겨온 와인을 지금 마셔도 좋을 것 같아요.
 
당신이 가방에서 와인을 꺼내자 쥬드가 눈을 빛냅니다.
 
세 사람은 사무실에서 찾은 종이컵에 와인을 따라, 가볍게 잔을 부딪치며 건배합니다.
 
작은 만찬이 끝난 후, 당신은 짐을 치우고 바닥에 누웠습니다.
 
알코올로 흐릿해진 시야에, 여전히 등을 돌리고 어제처럼 노트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는 현이 어렴풋이 들어오네요.
 
당신은 현에게 뭐라고 더 말을 하려 했지만, 술기운에 머리가 무거운 탓에 이내 금세 잠에 빠집니다.
 
 
 
 
깜빡.
 
잠에서 깨어나니 창밖이 어둑합니다.
 
머리가 아프고 숙취가 느껴지는 게 평소보다 더 오래 잔 것 같아요.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당신이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과 똑같은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는 현입니다.
 
밤새 그 노트를 쓴 모양입니다.
 
얼핏 보기에도 현은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도,
 
당신이 안중에 있는 것 같지도 않아 보입니다.
 
김하운:형.. 또 밤새 이걸 적은 거예요..? 좀 쉬어야죠, (당황한 듯 몸을 일으키고 다가옵니다.) 계속 예민한 채로 있으면 계속되는 여정에 지칠거라구요.
 
남궁현:(네 말을 듣고는 미간에 살짝 주름이 진다. 눈을 감고 미간을 꾹꾹 누르며 말한다) ...괜찮아, 나 진짜 괜찮아. (노트와 짐을 주섬주섬 챙기며)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그냥 가자, 빨리.
 
말을 마친 현은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밤은 찾아오고, 당신과 현, 쥬드는 길을 떠났습니다.
 
아스팔트 도로에 세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묵묵히 길을 걷던 당신은 문득 옆에서 걷는 현을 돌아보니, 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어제와 같이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것 같아요.
 
그런 현을 바라보는 당신의 옆으로 어느새 쥬드가 다가와 말을 건넵니다.
 
쥬드:저 친구, 정신이 좀 이상해 보이는데요.
 
행여 현이 들을라, 목소리를 낮춘 쥬드가 당신에게 속삭이며 말합니다.
 
쥬드:내가 이래 봬도 다른 나라 여행을 많이 다녀서 조금씩 배운 말이 많은데, 저 친구 말하는 걸 들어보니 라틴어, 독일어, 스페인어에…. 이 외에도 내가 못 알아듣는 말도 많은 걸 보니, 완전히 미쳤거나, 아니면 한 20개 국어 정도를 하는 천재거나, 둘 중 하나 같거든.
 
당신은 도저히 그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없습니다.
 
현이 저런 언어들을 할 줄 알던 사람이던가요?
 
영어는 회화가 가능한 수준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저렇게 노트를 적는 것도 그렇고, 어제 주유소에서의 일도 그렇고….
 
요 며칠 새의 현은, 마치 당신이 알던 현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미쳐가는 세상에서 현도 미쳐가는 걸까요.
 
……어느새 현은 당신과 쥬드 보다 몇 걸음 뒤처졌습니다.
 
당신의 표정을 읽기라도 한 듯 쥬드는 말합니다.
 
쥬드:뭐, 너무 걱정말아요. 이런 세상에서 제정신인 게 더 신기한 거죠. 나도 당신도 어디 한구석은 미쳐 있을걸.
 
그러면서 그는 당신에게 자신이 여행했던 나라들의 이야기, 자신이 지금까지 생존한 이야기 등…
 
한참동안 당신에게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새벽이 가까워져 오고 쥬드가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던 도중,
 
 
털썩.
 
뒤를 돌아보니, 현이 땅에 쓰러져 있네요.
 
가까이 다가가 현을 살펴보니 온몸이 불덩이같이 뜨겁고, 힘겹게 신음하고 있습니다.
 
요 며칠 그 노트를 쓰느라 고생하더니, 결국 건강을 망치게 된 걸까요.
 
쥬드:이 친구를 어디에 좀 눕혀야 할 것 같은데… 건물을 찾아보죠.
 
당신과 쥬드는 기절한 현을 부축하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요.
 
마침 동이 트려 할 때쯤, 저 멀리 건물이 하나 보입니다.
 
좋든 싫든 저기서 쉬어가야 할 것 같아요.
 
가까이 가보니 이곳은 초등학교인가 봅니다.
 
불에 타 거꾸로 뒤집힌 스쿨버스와 낡고 망가진 놀이터를 지나, 직사각형 모양의 학교 건물입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어둑한 교실 안을 느릿하게 배회하는 검은 그림자들이 보입니다.
 
김하운:
관찰력
기준치: 72/36/14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아, 그중 한 교실은 좀비가 없네요.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될 것 같아요.
 
당신과 쥬드는 창문을 열고 교실 안으로 들어와, 교실의 책상들을 한데 밀어 공간을 만들고 현을 눕혔습니다.
 
쥬드:일단 해가 뜨니까 우리도 좀 쉬죠.
 
당신은 현의 곁에 누웠습니다.
 
현의 몸은 뜨겁고, 표정을 찡그린 채 간간이 내뱉는 호흡은 불규칙합니다.
 
그런 현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속 깊숙한 곳부터 스멀스멀 불안한 감정이 올라옵니다.
 
갑자기 현은 왜 아픈 걸까요.
 
과연 당신과 현은 무사히 캘버리로 갈 수 있을까요.
 
이런저런 걱정을 껴안고 당신은 잠에 빠집니다.
 
 
 
 
남궁현:…아, …운아…, ……하운아,
 
당신은 당신을 부르는 현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당신의 옷자락을 잡고 신음하는 현이 보입니다.
 
현의 몸 상태는 나아지긴 커녕 더욱 안 좋아진 모양입니다.
 
남궁현:살려,줘, 너무, 너…무, 아파……,
 
현의 몸은 불덩이 같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어요.
 
어디가 아픈지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도 못 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현의 신음을 들은 쥬드 역시 깨어나 현을 살펴보고 말합니다.
 
쥬드: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거 심각한데요….
 
김하운: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32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러고보니 이곳은 초등학교였죠.
 
양호실을 찾아가면 약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쥬드와 함께 복도로 나오자 저 멀리서 5마리의 좀비가 당신들에게 달려듭니다.
 
또 다른 좀비들이 당신들을 향해 달려오기 전에 빠르게 양호실 위치를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후의 강렬한 햇살이 복도에 비치고, 일렬로 늘어진 교실을 지나면 교내 약도캐비닛, 사물함들이 보입니다.
 
어느 것을 볼까요?
 
김하운:(교내 약도를 확인합니다.)
 
군데군데 묻은 핏자국과 그을림 사이로 희미한 글씨들이 보입니다.
 
복도 끝을 지나 별관에 양호실이 있네요.
 
양호실 위치를 확인한 뒤, 걸음을 떼자 복도 끝에서 5마리의 좀비가 달려듭니다.
 
김하운:
민첩
기준치: 65/32/13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김하운, 체력 1 감소.
 
당신과 쥬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양호실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정돈되지도 크지도 않은 양호실엔 환자용 침대큰 서랍, 상자, 싱크대가 보입니다.
 
어느 것을 볼까요?
 
김하운:(환자용 침대를 먼저 급히 살핍니다.)
 
좀비 사태 이후 환자들이 사용했는지, 꽤 오래되어 보이고 너저분합니다.
 
현을 여기에다 눕힐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불이라도 가져가서 깔아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김하운:
관찰력
기준치: 72/36/14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침대들을 살펴보던 당신은 침대 아래의 서랍에서 안 쓴 수건들을 발견합니다.
 
이거라면 현에게 물수건이라도 얹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음은 무엇을 볼까요?
 
김하운:(해열제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큰 서랍을 찾아봅니다.)
 
당신은 책상 옆의 큰 서랍을 열었습니다.
 
이미 누군가가 사용한 흔적이 있지만 남은 약들이 있네요.
 
서랍 안에는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소염진통제, 해열제, 소화제, 제산제 등…
 
가지각색의 약이 들어 있습니다.
 
다음은 무엇을 볼까요?
 
김하운:(해열제와 소염진통제, 제산제... 눈에 보이는 약을 다 챙깁니다.) (다음으로 상자를 확인합니다.)
 
책상 밑의 큼직한 상자를 열자 붕대와 소독솜, 소독약 등이 들어있습니다.
 
전부 챙겨가긴 어렵겠지만 언젠간 쓸모가 있을 것 같아요.
 
다음은 무엇을 볼까요?
 
김하운:(붕대와 소독약을 챙깁니다.) (마지막으로, 싱크대를 확인합니다.)
 
양호실은 위생이 중요한 곳이니 손을 씻기 위한 싱크대도 마련되어 있네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잡이를 돌려 보니 물이 나옵니다.
 
당신과 쥬드는 좀비와 싸우며 더러워진 얼굴과 손을 씻고
 
싱크대 아래에 놓인 양동이에 물을 담았습니다.
 
약에 물까지, 정말 큰 수확이네요.
 
들어갈 때와 다르게 양호실에서 나갈 땐 짐이 양손 가득입니다.
 
당신과 쥬드는 짐을 가지고 가까스로 교실로 돌아왔습니다.
 
당신은 현을 품에 안고 일으켜 챙겨온 약을 먹이고,
 
물수건을 만들어 현의 이마에 올려 주었습니다.
 
쥬드:……이런 사람을 데리고 이동하긴 힘들 것 같은데…. 일단 이 친구가 좀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려야겠네요.
 
그는 당신이 현을 정성스레 간호하는 것을 바라보다 나지막히 말합니다.
 
쥬드:당신은 이 사람을 어디까지 믿습니까?
 
당신이 의아한 표정으로 쥬드를 돌아보자 그는 머리를 몇 번 긁적이고 말합니다.
 
쥬드:당신들이 둘도 없는 소중한 관계라는 걸 아주 잘 알겠지만… 상황이 상황이잖아요. 이런 때일수록 끝까지 믿을 건 자기 자신 하나 뿐입니다. 내가 왜 혼자가 됐겠어?
 
그는 그렇게 말하고 구석에서 자리를 잡고 누운 후 눈을 감습니다.
 
뜬금없이 그는 무슨 소리를 한 걸까요.
 
이런 상황일수록 현과 서로를 의지하여 역경을 헤쳐 나가야죠.
 
…그런데, 그런데…,
 
쥬드의 말을 들어서일지,
 
아니면 요 며칠 계속해서 느꼈던 불안감인지…,
 
계속해서, 마음 한구석이 먹먹한 느낌이 드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현의 상태를 살펴보니 아까에 비해 열이 내리고 한결 편해진 얼굴입니다.
 
현이 어느 정도 괜찮아진 것을 확인하자 긴장이 풀리며 피로가 몰려옵니다.
 
당신은 밤새 걸은 후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한 채 좀비와 싸워야 했습니다.
 
피곤한 게 당연하죠.
 
당신은 아까처럼 현의 옆에 누워 그의 옆모습을 바라봅니다.
 
얼굴에 붙은 밴드 하나하나가 안쓰럽습니다.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당신은 현을 쓰다듬어 보려다 그만두었습니다.
 
겨우 편히 잠든 현이 깨면 안 되니까요.
 
현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며 현을 바라보다 당신 역시 스륵 잠듭니다.
 
 
 
 
당신은 잠결에 들려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 목소리는……,
 
쥬드와 현의 목소리 같네요.
 
희미한 시야에 쥬드와 현이 없는 걸 보니, 둘은 복도로 나가 대화를 하는 것 같아요.
 
김하운:
듣기
기준치: 65/32/13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쥬드:…그러지 않으면 말해버릴 거야, 네가…,
 
대체 뭘 말한다는 걸까요?
 
점점 언성이 높아지는 것이,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당신이 둘을 말리러 나가봐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귓가를 찢는 총성이 울려 퍼집니다.
 
당신이 황급히 교실 문을 열고 나가자 보이는 것은,
 
새벽 어스름이 깔린 복도에 총을 든 현.
 
그리고 얼굴에 총을 맞아 눈도 감지 못한 채 즉사한 쥬드입니다.
 
당신과 눈이 마주친 현의 금빛 눈동자가 흔들립니다.
 
남궁현:…내가, 다 설명할게. 내 말 좀 들어줘, 하운아.
 
아,
 
그런데 설명할 시간이 있을까요.
 
어둑한 복도 너머로 총성을 들은 좀비 무리가 복도 양쪽에서 미친 듯이 달려옵니다.
 
둘, 넷, 여섯… 눈으로 어림잡아도 스무 마리는 넘어 보여요.
 
교실 안으로 들어가려 고개를 돌렸지만,
 
운동장에서도 좀비들이 학교 건물로 달려오네요.
 
도망가긴 이미 늦었어요.
 
이젠 어떻게 해야 할까요.
 
포기할까요?
 
―그때,
 
현이 당신의 손을 잡아끌고 달려가, 당신을 캐비닛에 밀어 넣고 문을 잠갔습니다.
 
당신은 뭐라 저항할 새도 없이 캐비닛에 갇혔습니다.
 
손잡이에 빗자루를 끼웠는지 아무리 애를 써도 열리지 않습니다.

 

 
캐비닛에 가로로 작게 난 틈을 통해 슬프게 웃는 현의 얼굴이 보입니다.
 
달빛을 받은 현의 눈동자와 머리칼이, 평소보다 밝게 빛납니다.
 
남궁현:미안.
 
그렇게 말한 현이 꺼내든 것은,
 
어제의 그 노래하는 곰 인형.
 
당신이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어느새 복도를 가득 메운 좀비들 사이로 현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좀비들의 비명 사이에 동요 소리가 복도에 이질적으로 울려 퍼집니다.
 
동요 소리가 점점 멀어져가고, 좀비들이 소리를 따라서 일제히 이동하는 게 보입니다.
 
이제 복도에서 좀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요.
 
새벽의 캐비닛 안은 춥고 어둡습니다.
 
마트에서 인형을 챙길 때부터 현은 좀비들을 소리로 유인할 작정이었나 봅니다.
 
현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김하운:- 이대로 캐비넷을 나가 형의 안부를 확인한 후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그 상태가 좀비이던, 주유소에서 본 사람처럼 매우 심한 상처를 입었던.. 그러니까, 옆에 있고 싶단 생각만 가득할 뿐입니다. 눈에는 눈물자욱이 가득합니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저 멀리서 발소리가 들립니다.
 
끼익.
 
캐비닛의 문이 열리며, 당신 앞에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현이 서 있습니다.
 
남궁현:하운아.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며 당신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는 현.
 
당신의 머리에 이스트베일의 서재에서 보았던 문장이 스쳐 지나갑니다.
 
아,
 
이제야 당신은 현의 그 모든 행동이 이해되었습니다.
 
당신 눈앞에 서 있는 남궁현은, 감염자입니다.
 
김하운: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도대체 언제부터일까요?
 
현은 이제 곧 좀비로 변해버리는 것일까요?
 
혼란스러워하는 당신에게 현은 몇 번 콜록대다 피를 토해낸 후에 말합니다.
 
남궁현:널 캘버리에 보내기 전까지 말 안 하려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네.
라디오 생각 나?
감염자는 죽여야 하잖아.
……날 죽일 거야?
 
김하운:그럴리가 없잖아요. 캘버리는 형과 같이 가지 않으면 의미 없어요.
 
현은 당신을 보다가 옅은 미소를 짓고는, 이내 말없이 쥬드의 짐을 뒤져 식량과 약을 챙깁니다.
 
이젠 시체의 짐을 뒤지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네요.
 
그게 설령 자신이 죽여버린 생존자라고 하더라도 말이죠.
 
인간성을 잃어가는 현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건 비단 그가 감염자라는 이유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남궁현:일단 가자, 시간 없어. 가면서 말해줄게.
 
학교를 빠져나오자 동이 터 주위가 환해지고, 쭉 이어지던 아스팔트 도로 대신 초원에 난 흙길이 보입니다.
 
그 위엔 자동차로 지나간 듯, 풀들이 눌린 흔적이 있습니다.
 
…정말로 캘버리에 가까워진 것 같아요.
 
길을 걸으며 한참을 말이 없던 현은 마침내 입을 엽니다.
 
남궁현:내가 깼을 때, 쥬드가 내 가방을 뒤지고 있더라.
걔는 이미 내가 감염자인 걸 알고 있었고, 우리 짐을 훔쳐서 도망가려고 했대. 그걸 막았더니 내가 감염자인 걸 너한테 말하겠다고 협박했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거야.
 
그렇게 말하고 현은 품 안에서 요 며칠간 붙들고 있던 노트를 꺼내 보여줍니다.
 
남궁현:이거 완성하면 네가 궁금해하는 거, 전부 말해줄게.
금방 완성되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날, 조금만 더 믿어줘….
 
현은 당신에게 그저 기다려달라고만 하면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아요.
 
오늘 일이 아니었다면 당신에게 감염자라는 것을 끝까지 밝히지 않았겠죠.
 
당신은 문득 쥬드가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저 말은 어디까지 진실일까요.
 
…당신은 아직도 현을 믿을 수 있나요?
 
김하운:
심리학
기준치: 64/32/12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현의 말은 완전한 진실도, 완전한 거짓도 아닌 것 같아요.
 
각자 다른 생각과 불안감을 품고, 당신과 현은 계속해서 걸었습니다.
 
한참을 걸어 정오가 될 때쯤, 저 멀리 언덕 위로 십자가가 보여요.
 
언덕을 오르니 작고 오래되어 보이는 교회가 나옵니다.
 
아까 본 십자가는 교회 지붕에 달린 것이었나 봅니다.
 
가까이 가보니 좀비들을 막기 위해 창문에 나무판자를 덧댄 흔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꽤 오래전의 것인지 먼지가 끼어 있어요.
 
현은 지도를 들여다보다 당신에게 말합니다.
 
남궁현:이제 곧 도착이다. 저기서 좀 쉬었다가 해 지면 움직이자, 우리.
 
교회의 정문을 열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예배당 끝에 걸린 십자가입니다.
 
인기척이 하나 없는 예배당 안은 고요합니다.
 
예배당 맨 앞에 짐을 풀고 현은 당신에게 말합니다.
 
남궁현:나,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심심하면 교회 좀 둘러봐.
옆에 그냥 앉아있어도 좋고.
 
김하운:(노트에 뭔가를 적을 때는 형이 꽤 집중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잠시 가만히 앉아있다가, 교회를 둘러보기로 합니다.)
 
당신은 현을 방해하지 않기로 하고 예배당 안을 돌아봅니다.
 
예배당의 정면에는 단상이 있고, 위에 달린 십자가를 중심으로 양옆에는 피아노계단이 보입니다.
 
어느 것을 볼까요?
 
김하운:(무언가에 이끌린 듯, 단상 앞으로 다가갑니다.)
 
나무로 된 단상은 가슴께까지 오는 높이입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먼지가 쌓인 단상 위에는 성경이 놓여 있습니다.
 
먼지를 걷어내고 성경을 들어 올리자 사이에 펜이 끼워져있습니다.
 
펜을 따라 성경을 펼치자,
 
마지막 예배에 읽은 듯한 구절에 밑줄이 쳐져 있습니다.
 
당신은 이 문장으로 이 교회에서 마지막으로 드린 예배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멸망이 도래했으니 구원을 바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네요.
 
다음은 무엇을 볼까요?
 
김하운:나의 구원이시어... (마지막 문장을 따라 읽어보고 다시 제자리에 둡니다.)
(단상에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십자가로 향합니다.)
 
예배당 중앙에 걸린 십자가는 높고 까마득합니다.
 
십자가에 손대어보니 뭔가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십자가의 뒷면에 손을 넣어보니 열쇠 묶음이 잡힙니다.
 
교회의 열쇠들을 여기에 두었나 보네요.
 
다음은 무엇을 볼까요?
 
김하운:(열쇠 묶음을 챙깁니다. 십자가를 기준으로 옆에 있는 피아노를 살핍니다.)
 
뚜껑이 닫힌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습니다.
 
피아노 위엔 사람들이 사용했을 찬미가와 달력이 있습니다.
 
날짜마다 엑스 표시가 그려진 달력은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의 것입니다.
 
달력을 넘기자 달마다 교회의 중요 행사들이 적혀있습니다.
 
하지만 좀비 사태가 터진 이후부턴 각 날짜 칸마다 엑스 표시가 그려져 있는 것이,
 
마치 이 교회 안에서 생존한 날짜를 센 것 같습니다.
 
엑스 표시가 끊긴 날짜는 2월 17일.
 
좀비 사태 발생 1달 후네요.
 
이 칸은 엑스 표시 대신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네요.
 
다음은 무엇을 볼까요?
 
김하운:2월 17일... 그러고 보니.. (현 쪽을 오랫동안 한 번 쳐다봅니다. 이윽고 계단을 살핍니다.)
 
좁은 나선계단입니다.
 
위층의 다락방으로 향하나 봅니다.
 
계단을 올라가자 문 하나가 있고, 그 문엔 기도실이라 적힌 팻말이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문이 안에서 잠긴 건지, 잘 열리지 않습니다.
 
열쇠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당신은 아까 얻은 열쇠들을 하나하나 끼워 보았습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엄청난 악취가 느껴집니다.
 
당신은 이 악취가 슬프게도 익숙합니다.
 
지독하게도 맡아온, 시체가 썩는 냄새입니다.
 
김하운: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당신은 눈살을 찌푸리고 소매로 입을 틀어막은 후 어둑한 기도실 안을 돌아보았습니다.
 
좁은 기도실 안을 열 명 정도 되는 사람들…,
 
아니, 이제는 썩어 백골이 되어가는 시체들이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시체들의 정중앙에는 그들이 마지막으로 피워낸 향로가 보입니다.
 
아마도 이 사람들은 교회에서 삶을 이어가다,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이곳에서 단체로 생을 마감했나 봅니다.
 
자신들이 믿는 신에게 구원을 바라면서 말이죠.
 
마지막 기도대로, 그들의 영혼은 구원받았을까요?
 
김하운:
관찰력
기준치: 72/36/14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돌아가려는 찰나, 시체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자세히 보니, 묵주가 떨어져 있네요.
 
시체의 것이지만 가져가고 싶다면 가져가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김하운:(목주를 한동안 빤히 쳐다봅니다. 지금 자신과 현이 처한 세상의 상황에서 목주의 의미를 잠시 되뇌입니다.) ... (그렇게 한참을 쳐다보다가, 아무것도 챙기지 않은 채로 하운은 방 문을 다시 닫습니다.)
 
당신은 현에게 돌아왔습니다.
 
몸을 웅크리고 미친 듯이 노트에 무언갈 적어 내려가는, 이젠 익숙한 그 뒷모습.
 
한참 열중하던 현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당신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말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현의 밝은 미소입니다.
 
남궁현:완성했어, 하운아. 이리 와, 이제 다 말해줄게.
 
현은 환한 웃음을 띤 채로 양팔을 벌리며 당신을 바라봅니다.
 
김하운:(그러니까, 이 사태가 일어나지 않은 일상에서. "너는 오늘 앉아만 있어. 내가 아침 준비할게." 와 같은 상황에서의 하운의 모습이요. 그것과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입니다. 자신을 위해 뭔가를 준비해준 이 상황이 그저 기쁠 뿐입니다. 그저.. 환히 웃은 채로 마주 양팔을 벌려 한아름 안고, 품에서 온기를 느낍니다.) 진짜요? 고마워요 ! 이제야 들을 수 있네요.
(그리고 그 웃음을 보면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해사한 웃음. 이것만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궁현:(저도 모르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너의 품에 안겼지만, 사실대로 털어놓을 생각을 하니 가슴 한켠이 무거워졌다. 미소가 조금 옅어진 채로 너의 품에 얼굴을 부비다가 고갤 들어 널 본다) 기다려줘서 고마워. 날 믿어줘서 고마워. (너를 안은 팔에 조금 힘이 들어가더니 조금 떨어져 서서는 네 양손을 가볍게 잡았다. 웃음기라곤 없는 얼굴이 되었다.) 모든 얘길 해줄게. 길고 지루한 얘기가 될 거고, 믿을 수 없을지도 몰라. ...그래도 날 믿어줘. 난 너한텐 거짓말 안 하는 거 알잖아, 그치.
 
김하운:(수 일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계속 몰두하며 무언가를 적는 현의 모습을 상기합니다. 의미 없지 않을 리 없습니다. 현이 저를 놓기 전, 꼬옥 안은 그대로 현을 조금 들었다가 올립니다. 그리고 양손을 맞잡은 채로 눈을 맞춥니다.) 응. 준비 됐어요. 사실 거짓말이더라도, 전 형이 하는 말이면 진심으로 듣는 걸요. ( 하면서 다소 진지한 그 얼굴을 보며.. 가볍게 이마에 입을 맞춥니다.)
 
남궁현:(짧게 심호흡을 하고는 너의 손을 다잡았다.) 며칠 전에 기억나? 우리, 무너질 것 같은 연구실 지나쳤잖아. 그때 웬 글이 있길래 읽었는데, 꿈에 어떤 남자가 나와서 거래를 하자더라.
내가 감염되는 대신에, 치료제를 만들 공식을 알려주겠다 그러더라고.
처음에는 당연히 싫다고 했어. 내가 너를 두고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하겠냐. 그리고 내가 경영학도라지만 치료제 공식 같은 건 너무 이과 분야잖아, 내가 못 하는 거라고. ...여튼, 계속 거절했는데도 제안을 해오길래 왠지, 괜찮을 것 같기도 해서 그러겠다고 해버렸어.
원래는 감염 24시간 만에 좀비가 되는데, 난 100시간으로 늘려주겠대. 대신에 치료제 공식을 만드는 거지. 완성 전까지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는 조건도 더해졌고.
...이제 알겠어?
이 노트는 꿈에 나왔던 그 남자가 불러주는 치료제 공식을 받아 적은 거야.
 
남궁현:이것만 있으면 좀비인지 뭔지도 다 끝인 거야.
난 네가 그딴 고깃덩이한테 쫓기면서 사는 건 싫어.
그래서, 이런 선택을 해버린 것 같다.
………미안.
…미안해. 더 할 말도 없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당신은 떨리는 눈동자로 현을 바라봅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감정인가요.
 
당신을 위해 죽음을 불사한 당신의 연인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김하운:(연구소.. 꿈... 치료제의 공식..... 그에 대한 대가.. .......100시간. 나를... 나를 위해.......)
(현의 설명을 모두 듣고 내용의 키워드와 같은 단어들을 계속 뇌리에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줄곧 따른 당신을. 미안하다고 하는 연인을...)
(하운은 일단 다시 한 번 꼬옥 안아주기로 합니다. 말 없이 꼭 안아줍니다. 방금 전 안아준 것 보다 훨씬 더 세게. 오랫동안요.)
미안하다고 하는 건.. 혼자 남을 저를 위한 말이겠죠. 형은.. 선택을 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 이후에도 저를 생각하는데.. .. ...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습니다. 조금 후에, 현의 어깨에 얼굴을 묻을 뿐입니다.)
 
남궁현:(저를 안아주는, 저의 어깨에 고개를 묻는 너를 가만히 쓰다듬고 등을 쓸어줄 뿐이었다. 그래, 무슨 말도 할 면목이 없었다. 자신의 선택이 미친 선택이었음을 잘 안다. 영원을 약속하고도 한 순간의 선택으로, 제멋대로 종지부를 찍어버리고 말았으니.) ...너랑 함께 해주겠다는 말은 못하겠네. (더한 말은 하지 않았다. 자세한 말 하나하나 전부 꺼내서 너를 이해시킴과 동시에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너는 내가 어떻게 말하든 나의 모든 걸 이해하고 파악했던 사람이니까, 오늘도 그러할 것이라 믿었다. 다시 말을 꺼내는 현의 목소리는 대단할 정도로 초연하고 담담하다.) ...너도 그렇게 살면 돼, 하운아. 너도, 네 생각만 하면서 살아. 그러면 돼.
 
김하운:어떻게.. 그래요. 어떻게 그래요....... (악물고 자신만 바라봐도 자연스럽게. 지독히 당연하게도 그 옆에 나란히 선 현의 모습이 따라옵니다. 그 사실에 도저히 숨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 흐으윽.. (아주 작은 숨소리가 흘러 나옵니다.)
(긴 여정동안 얼마나 많은 미래의 갈래를 생각했는지 자기 자신조차 이미 세기를 잊었습니다. 그 미래 중 지금의 현실보다 훨씬 악독한 것도 있었지만, 무색하게도 이 순간이 가장 쓰라릴 뿐입니다.)
형.. 그걸 잘 못하겠어요. 제가 형에게 잘 해보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것들 중... 그게 가장 힘든 거. 형도 잘 알잖아요..
 
남궁현:(아무리 숨을 죽여도 들리는, 울음과도 같은 소리를 듣고도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은 인간성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모든 것을 초연해 버렸기 때문일까. 가만히 너의 얼굴을 쓸어준다. 눈가를 가볍게 문지르는 손길에는 여전히 애정이 서려있다.) 알지, 알아..., 내가 그걸 어떻게 모르겠냐. (곧 너의 손을 다시금 꼬옥 잡고서는) 넌..., 나를 너무 일찍 만난 것 같다, 하운아. 너 이제 스물 둘이야. 네 생각도 해야지. 아니, 네 생각만 해도 부족해. 내가 낄 틈이 없는 게, 그런 게 맞는 거라고 생각해, 나는. (네 안이 온통 나였으면 했던 나날들이 수없이 스쳐 지나간다. 나는 여전히, 네 안이 온통 나이길 바란다. 그럼에도 네게 뱉은 말을 번복하지 않았다.) 안 돼도 하는 거야. 힘들어도, 하기 싫어도, 해야 되는 일이 있는 거야, 알잖아, 응?
 
김하운:(손길을 가만히 받다가, 부비기도 하고, 고개를 틀어 현의 목에 가만히 이마를 대보기도 하고, 다시 처음과 같이 어깨에 얼굴을 묻어버리고.. 자잘한 행동이 반복될 뿐입니다.)
(저를 위한 소리지만 괴롭기만 합니다. 이태까지 현에게 들었던 어떤 말들 중 이만큼 진심이었던 말은 '사랑해'란 말 뿐 아닐까요. 비슷한 무게를 느끼지만 사랑한다는 말과 다르게 이 말들은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괴로울 뿐입니다.)
아무리 형이 그렇게 말 해도.. 저는 그에 대한 상상을 하기가 어려워요. 형이 말 한 것 처럼 저는 너무 어려서... 형 없는 세계를 담담히 마주해야 한다는 말에서 멀어지고 싶을 뿐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찬찬히 고개를 들어올립니다. 눈가는 빨갛고, 눈물 자욱이 남았습니다. 마주한 얼굴은 너무나도 담담해서, 한 번 눈을 깜빡했을 땐 볼을 타고 눈물이 흐릅니다.)
 
남궁현:(가만히 너를 보다가 울음기 섞인 숨이 터져나왔다. 너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서투르게 손으로 닦아내었다. 나는 네가 우는 모습을 거의 처음 보았으니 당연하게도. 이내 숨소리와 상반된 얼굴로 너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하운아. ...하운아아..., ...김하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지만 얼굴은 메말라있다. 너의 양손을 꾹 잡고 다시 너를 올려다 본다.) 알아, 나도 알아. 20대 후반의 5년과 10대 후반의 5년은 너무나도 다르단 걸 알아. 뼈저리게 느꼈어. 그래서 후회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난 네 삶에 끼어들지 않았을 거야. 나는, 난, ...나는, 지금, 네 삶을 망친 것 같아서, 죽도록 미안해. (떨리는 숨을 내뱉고는 몸에 힘이 탁 풀린다. 바닥에 주저 앉다 못해 엎드려 버렸다. 그리고는 나지막히 중얼인다.) 나도 이딴 말은, 죽어도 하기 싫었다고오...,
 
김하운:(한껏 낮아진 현을 따라 하운도 함께 내려가 앞에 주저 앉습니다. 현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칩니다. 두 사람의 손 위로 하운의 눈물이 떨어집니다.) ... 누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겠어요. 그리고.. 어떻게 형이 제 인생에 끼어들었다고 생각하겠어요.. 전... 전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오히려 그래주어서 고마울 뿐이에요. 형.. 괜찮으니까 절 봐주세요. 힘이 없다면 저에게 안겨 주세요.....
(당장의 온기. 그것은 현이 하운에게 바라는 태도를 위해 필요한 가장 큰 위로. 어린 연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남궁현:(잠시 그 어떤 말도 행동도 없이 가만히 있다가 땅을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고개는 여전히 땅바닥을 향해 있고, 손 위에 떨어진 눈물 방울을 응시했다. 후회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후회가 되었다. 네 말대로 이런 상황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기에 누구의 탓도 아니지만, 나는 후회가 되었고 좌절감에 숨이 막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눈에 담고, 너의 품에 안겨들었다. 너의 온기를 한껏 느끼며 힘껏, 안아주었다. 내가 지금 여기, 네 앞에 있음을 너에게 알리는 듯이.) 나는 염치 같은 거 없는 사람이야. 그래서 너를 안은 거야. (뜸) 내가... ...용기가 생길 수 있게, 사랑한다고 말해줘.
 
김하운:(앉은 채로 깊게 현을 끌어 안습니다. 마음에서 어떠한 용기가 조용히 피어납니다. 무엇에 대한 용기인지는 아직 본인조차 알지 못합니다. 어떠한 결심으로 이어질지, 무엇으로 이어질지.. 그런 것이요.)
(허리를 꼭 끌어 안으니 상반신은 서로에게 가장 가까이 겹쳐있습니다. 배가 한 번 눌린 것으로 간주할 수 있을까요?) 사랑해요. 너무. 무지. 완전. 정말로 사랑해요.
 
남궁현:(숨이 막힐 정도로 꽉 안아주는 너의 모습마저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너의 목소리, 품, 숨결, 손길 하나하나에 담긴 애정이 너무나도 좋았다. 나에게 쏟는 애정을 잘 알기에, 어떠한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나도 사랑해. (옅은 미소를 보이며 너를 본다. 그러고는 양볼을 감싸고서 짧게 입술을 맞대었다가 떨어졌다.)
 
김하운:.사랑해. 사랑해요. 사랑해요. (입맞춤은 상황과 무색하게 애틋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입술이 채 멀어지기 전에 당연하다는 듯 다시 입술을 겹칩니다. 그저 입맞춤이었다가, 이내 더 깊이 탐하려듭니다. 지금이라면 밀쳐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
 
남궁현:(너를 어떻게 밀어내 버리겠는가. 손이 서서히 머리칼을 쓰다듬더니 목을 감았고, 고개를 기울여 입을 맞춘다. 오랜만의 애정 행각인 것 같다. 눈을 감은 채로 네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붙으려 다가간다. 네가 저를 깊게 탐하면 탐하는 대로 너를 온전히 받아들인다.)
 
김하운:(입술을 혀로 비집고 들어가 훑는 행동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하운의 쪽으로 기울었던 상체가 이젠 점점 반대로 넘어갑니다. 그저 뒤로 쓰러지지 않도록 허리를 받치는 손에는 힘이 들어가고.. 혀가 얽히는 것이 깊어질 뿐입니다. 살며시 눈을 떠 연인의 모습을 눈에 담습니다. 예배당의 십자가 앞에서 키스하니 마치 사랑을 확인하는 결혼식의 마지막 차례와도 같게 느껴집니다. 성경책에서 일컫는 성스러움과는 다소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목주를 챙길 생각조차 없었던 하운에겐 그 어느 것도 거칠 것이 없습니다. )
 
남궁현:(네게 몸을 맡긴 채로 너를 온전히 느끼려 하였다. 너를 조금 더 당겨 안으면서 끝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지금이 좀비 사태이기에 주변에 그 누구도 없다는 사실이 다행으로 느껴졌다.) 으응, 숨, (한참 만에 입술을 잠시 떼고서는 달리는 숨으로 겨우 내뱉은 말. 하지만 아쉬운지 짧게 숨을 고르고 너를 다시금 당겨 안으며 입술을 맞대었다. 예전의 어느 날처럼, 약간 조르듯이 네 입술을 가볍게 물었다가 입술을 꾹 눌러 부빈다.)
 
김하운:(점점 기울어, 이제 거의 현의 상체는 바닥에 닿기 직전입니다. 앉은 상태로 꼭 끌어안고 기울인 탓인지, 바닥에 누운 현에게 올라탄 꼴이 되었습니다. 현이 잠시동안 숨 쉴 틈 동안 가만히 내려다 보다가, 여느 때와 같은 입술의 감각과 상황에 그저 다시 입술을 깨물며 키스를 시작할 뿐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탐하고.. '하아,' 하는 하운의 숨소리가 들리고, 눈을 떠 서로를 마주보면,
하운의 눈에는 다시금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남궁현:(살결, 숨, 그리고 타액이 맞닿는 이 순간 순간을 뇌에 새기고 싶을 정도로 소중했다. 한참 만에 입술이 떨어지고, 너를 응시하였다. 그제야 제가 바닥에 거의 누워버린 상태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제게로 떨어지는 눈물 방울에, 너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고 이마를 맞대었다. 말없이 그러고 있다가 곧, 몇 년 전의 어느 날처럼, 너를 품 안에 안고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아무런 이유도 묻지 않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김하운:지금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생각해봐도 모르겠단 말예요. 전... 전 형이 없이는 온전한 행복을 느끼지 못 할 거라는 건.. ... 너무 잘 아는 사실이라.. 그래서.... (말 하는 새에 숨소리가 미어집니다. 가만히 쓰다듬을 받으니, 후두둑 눈물은 더 떨어질 뿐이고.. 하운은 한 번 더, 현을 꼭 끌어 안고.. 현실과 멀어지려 할 뿐입니다.)
 
남궁현:(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이나 너를 안아주며 등을 쓸어주고, 너의 말을 들어줄 뿐이었다. 너의 눈물이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한참이나 네가 안정되길 기다렸다. 숨소리가 조금 정돈되었다고 느꼈을 때 입을 열었다.) 아까 말했던 100시간, 이제 16시간 정도 남았어. 캘버리까지 얼마 안 남아서 지금 출발해도 되긴 하는데..., 내가, 사실 너무, 너무 힘들어서..., 조금 자고 가자, 우리. (너의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부볐다.) 조금만 자고, 해 떨어지면 다시 움직이자.
 
김하운:16시간..... (그 정도밖에 남지 않았던가. 하고 싶었던 말과 행동들이 수없이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눈물이 그친.. 약간 서늘한 표정으로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마에 입술이 닿자 고민이 의미가 없어집니다. 웃음지으며, 그러자고 할 뿐입니다.) 그럴까요. 힘든데. 좀 잘까 싶어요.
(그렇게 말하지만.. 이번엔 자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저 자는 척.. 눈을 감았다가... 가만히. 조용히, .. 현의 모습을 눈에 담을 생각입니다.)
 
남궁현:응, 너도 조금 자. 그래야 캘버리까지 탈 없이 도착하지. (바닥에 천천히 자리를 잡고서 너를 바라본다. 왠지 현의 눈동자가 이전에 비해 조금 흐려진 것 같아 보인다. 너의 웃음에 괜히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찬찬히 정리해 주고서는 이내) 하운아, ...잘 자라고 해줘.
 
김하운:응... 잘 자요. 아무 꿈도 꾸지 말고.. 깊이 자요. (그저 탁한 눈을 바라보며 웃습니다. 현이 그 눈을 감고.. 잠에 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요. 가볍게 토닥입니다.)
잘 자요.
 
당신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현은 눈을 감고 죽은 듯이 잠들었습니다.
 
예배당 안은 고요하고, 공기 중에 부유하는 먼지들이 빛을 받아 반짝입니다.
 
창틈으로 비치는 오후의 나른한 햇빛에 그려진 십자가의 그림자가 예배당에 길게 깔립니다.
 
십자가의 음영은 공교롭게도 잠든 현을 가로지르네요.
 
잘 자라는 당신의 인사 때문일까요, 아니면 마침내 노트를 완성해서일까요.
 
때 묻은 노트를 껴안고 바닥에 웅크려서 곤히 잠든 현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하고,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당신은 그런 현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인류를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김하운, 당신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여 인류의 운명이 달린 거대한 십자가를 지고 캘버리로 향하는 현.
 
그런 현의 모습은…… 성경의 누군가를 닮지 않았나요.
 
당신과 현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16시간.
 
내일 당신이 잠들 땐 현 없이 혼자 잠들어야 하겠죠.
 
당신은 언제나처럼 잠든 현의 옆에 누워 그를 하릴없이 바라봅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이 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라면서요.
 
 
 
 
언제 잠든 걸까요.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당신을 내려다보는 현입니다.
 
미묘하게 탁해졌지만 여전히 노란 눈동자가 당신을 가만히 응시하다, 이내 현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집니다.
 
남궁현:잘 잤어?
 
해가 지는 시간인지 아직 흐릿한 시야에 보이는 주변은 온통 붉은 빛으로 일렁입니다.
 
노을 빛을 받은 현의 모습은 여느 때보다 빛나는 것 같습니다.
 
남궁현:이번이 마지막이야. 이제 정말 도착이야.
 
그렇게 말하며 당신을 바라보는 현의 눈시울마저도 붉게 보이는 것은 노을 탓이겠죠.
 
당신과 현은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고, 함께 걷는 마지막 여정을 떠났습니다.
 
밤이 되고, 별이 하나둘씩 떠오릅니다.
 
자동차나 건물의 불빛도, 공장의 매연도 없는 밤하늘은 맑고 선명합니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올려다보면 쏟아질 듯한 별들로 가득한 밤하늘은 매우 아름다워요.
 
안전지대가 정말로 가까워졌는지,
 
이따금 지나치는 표지판들은 캘버리 교도소로 향하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둘은 언제나처럼 한참을 걸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손목시계를 들여다본 현은 당신에게 말합니다.
 
남궁현:하운아, 저기 봐.
캘버리야.
 
고개를 들자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선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그 반대편으로는 캘버리 교도소, 당신들의 목적지인 안전지대가 보입니다.
 
이 길고 긴 여정의 끝이 보여요.
 
작게만 보이던 캘버리는 이제 꽤 가까워 보입니다.
 
현은 당신을 보며 말합니다.
 
남궁현:한 시간 남았다. 딱 맞게 도착해서 진짜 다행이다.
…하운아, 괜찮으면 우리, 일출 보고 가지 않을래?
 
김하운:응... 그럴까요.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도착하고 싶었던 곳이지만.. 이제는 오로지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이 손을 놓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당신과 현은 주변의 적당한 곳에 손을 잡고 서로에게 기대어 앉아 지평선을 바라보았습니다.
 
맞잡은 현의 손은 이제 인간의 것이 아닌 것처럼 차갑게 느껴져,
 
당신은 현의 손을 더욱 힘주어 잡았습니다.
 
저 먼 초원의 지평선 너머로 밤의 장막이 서서히 걷히며 해가 뜨고,
 
주변이 차츰 따듯한 빛으로 물들어갑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손잡고 동이 트는 것을 오래오래 바라보았습니다.
 
...이 순간이 영원하다면 바랄 것이 없겠어요.
 
하지만 시간은 야속하게도 흐르고, 동이 튼 주변이 환합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10분 남짓.
 
마지막을 알리는 듯, 현의 몸은 다시금 피를 울컥 울컥 토해냈습니다.
 
현은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당신에게 노트를 건네줍니다.
 
 
남궁현:하운아. 이거 갖고 들어가. 넌 꼭 살아. 내 몫까지 살아. 약속해.
 
당신에게 노트를 가지고 캘버리로 들어가 살아남아 달라는 현.
 
당신은 현의 말을 따를 건가요.
 
아니면 현과 남아 죽음을 택할 건가요.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건가요?
 
김하운:형. 제가 그럴 수 있을 리 없다는 걸.. 쉽게 형 말을 들어줄 거라는 걸... 형도 잘 알잖아요. (한 손마저 맞잡고 현을 바라봅니다.)
 
남궁현:(맞잡은 손을 바라보면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얼굴의 피와 눈물을 옷 소매로 대충 벅벅 닦아내고 너를 올려다본다.) 알지, 다 알아. 그냥 이건, 희망 사항일 뿐이야. 네가, 너 나은 세상에서 살길 바랐으니까, 그래서 이런 선택을 했으니까, 그러니까..., 너라도 살길 바랄 뿐이야. (뜸) 그치만 나는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좋아. 넌 어떤 선택을 하고 싶어? 어떤 선택이, 너의 최선인지 말해봐. 뭐든, 다.
 
김하운:(아무 말 없이 다가가 입을 맞출 뿐입니다. 피 맛이 비릿히 느껴집니다. 입맞춤 후에 마주 본 얼굴.)
(해사한 웃음입니다. 현과 함께 있을 때. 진정으로 행복할 때. 언뜻.. 현의 일상에서 가끔 뇌리에 스치는. 그. 하운의.. 행복한 웃음이요.)
형과 함께 하는 세상이, 남들이 보기엔 그것이 비운의 엔딩일지라도.. 저에겐 해피엔딩이에요. 형과 함께한다는 제 희망사항을 부디.. 부디 받아주세요.
 
남궁현:...응, 그럴게. 너의 해피엔딩은 나한테도 좋은 거니까, 그러니까..., 받아들일게. (너의 해사한 웃음은 나를 기쁘게 한다.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여 미묘한 표정이 되었다. 고개를 숙여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너를 보며 온전한 미소를 지었다. 곧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네 손 위에 올렸다. 묵직한 총. 그래, 쥬드를 쏴 죽였던 그 총이다. 현이 가지려 했던 용기는 이런 것이었다. 총을 쥔 채로 네 손 위에 올려놨을 뿐, 건네진 않은 것도 그런 의미다.) 준비되면 말해. 난 준비 됐어.
 
김하운:가장 마지막까지.. 형의 이성이 남아있을 때까지... 그때까지 기다렸다가요. (그렇게 오랫동안.. 맞잡은 손을 쳐다보기도, 아름다운 눈을 쳐다보기도 합니다. 현의 모든 것을 눈에 아로 새깁니다.) .... 이제 됐어요.
 
남궁현:(저의 마지막을 새기겠다는 말에 다시금 얼굴과 곳곳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너의 손을 꼭 잡고, 다잡고 또 다잡다가, 이제 됐다는 말이 나오자 조금 더 밝은 미소를 지었다. 어딘가 처연한 미소 사이를 눈물 한 방울이 가로지른다.) 마지막, 정말 마지막으로, 사랑한다고 해줘. 듣고 싶어.
 
김하운:그렇게 정돈하지 않아도 좋아한다는 거 아시죠? (저런.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복잡한 감정에 그만 다시 눈시울을 붉히고 맙니다. 웃는 얼굴에 이질적으로 눈물이 뚝뚝 흐릅니다. 언뜻 보면 너무 기뻐서 우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맞잡은 손 중 반지를 낀 현의 손을 제 쪽으로 당겨옵니다. 배에 손이 닿자 그는..)
사랑해요. 그 눈 온 날에 느꼈던 감정 그대로. 여전히 쭉. 형을 계속 사랑해요. 변하지 않아요.
사랑해요.
 
사랑해, 사랑해.
 
현은 이성이 멀어져 가는 것을 직감하자, 당신에게 수 없는 사랑 고백을 하며 총을 양손으로 잡았습니다.
 
떨리는 손, 그리고 상반되는 미소를 띤 얼굴.
 
점점 탁해지는 눈동자.
 
남궁현:다음,에도, 나 만나. 꼭.
 
서툴어진 듯한 말까지.
 
당신이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방아쇠가 당겨집니다.
 
 
탕,
 
찢어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립니다.
 
그래요, 당신 곁에 현이 없다면 이 모든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미래도, 희망도, 삶도 버렸지만,
 
서로를 껴안은 이 순간 둘은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합니다.
 
다른 모든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당신이 현을 마지막으로 당겨왔던 것처럼,
 
현은 당신 위에 쓰러집니다.
 
눈이 감기기 전 마지막으로 바라본 하늘은 야속하게도 아름다워요.
 
바라던 대로 당신과 현은 영원할 거예요.
 
먼 훗날 누군가가 당신들과 노트를 발견한다면,
 
아마도 당신과 현의 이야기는 그렇게 기억될지도 모르겠네요.
 
END 3. 차라리 둘이 함께 영원을 꿈꾸자.
 
김하운 실종, 남궁현 실종.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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